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툰쿠 압둘 라만 (문단 편집) == 마하티르와의 악연 == 당 내의 비주류였던 [[마하티르 빈 모하맛]]는 라만에게 만만치 않은 정적이었다. 겉으로는 말레이인 우대를 주장했지만, 그러면서도 라만 정권에 부정적이었고, 5.13 사건 전후로 라만을 "돼지"라고 비난했다가 UMNO에서 출당되었다. 이후 라작이 집권하면서 마하티르는 복당에 성공했으나, 이는 [[라파엘 칼데라|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1981년 총리에 오른 마하티르는 자기 세력을 위시로 한 A조를 결성해, 라만-라작을 위시로 한 B조를 대거 숙청시켰다. 이 과정에서 라만은 마하티르를 비판했다가 찍혔고, 결국 B조가 쓸려나가는 상황 속에서 불가피하게 탈당했다. 이후 라만은 46년 정신당에 가담했지만, 얼마 못 가 세상을 떴다. 다만 라만의 공은 마하티르도 인정은 했는지, 마하티르의 측근이 "라만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고 밝혔고, 국장과 함께 "독립의 아버지"로서 추앙을 받게 되었다. 비록 악연이어도 죽음만큼은 안타까웠던 부문. 하지만 라만이 마하티르를 출당한 점은 훗날 우연치 않게 재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비록 [[계파 갈등]]을 조장해 UMNO의 흑역사를 만든 마하티르였지만 그래도 UMNO의 원로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 한때 마하티르는 라만, 라작과 더불어 말레이시아 '''3대 국부'''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마하티르는 2015년 변절해 PH에 가담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7년, 마하티르가 라만 시절 [[http://www.utusan.com.my/mobile/berita/politik/tun-mahathir-ajar-dap-hina-melayu-8211-raja-petra-1.530367|DAP에게 말레이인을 모독하라고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면서]] 마하티르의 평판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고도 2018년 5월의 총선거에서 무려 90대의 나이로, 말레이시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의 주인공이 되어 재집권하는 기염을 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